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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용주

노동일기2 (유용주) 중..

가이브 2009. 3. 16. 06:49

 

무엇보다 참을 수 없는 건 돈이었다. 군대에 가면 먹고 자고 입는 것부터 모든 것을 국가에서 지급해주는데 무슨 돈이 필요할까 하겠지만 그것은 군대를 경험해보지 못한 사람들의 얘기다.

우선 희택이와 보영이네 가족들이 면회를 와서 한바탕 잔치를 했다. 희택이네는 집안이 좋아서 그런지 부모님과 누나 가족들이 총출동해서 술과 음식을 준비해와 토요일 오후에 때 아닌 중대회식까지 할 정도로 인심을 쓰고 갔다. 보영이는 희택이만큼은 아니었지만 시골에서 떡을 해 와서 온 중대를 돌리고도 남았고 기간병들에게 사제 담배를 한 보루씩 안기기도 했다.

자대 배치를 받고 신병생활을 시작할 때 중대 간부들이나 고참들에게 떡고물을 발라놔야 내무반 생활이 편해진다는 것쯤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다. 하지만 내게는 술과 음식을 살 돈도 떡을 쪄 오고 담배를 사 가지고 면회 올 사람도 없었다. 가난은 우리 식구들이 가진 유일한 재산이었다. 겨울이 오면 윗목 두지에 쌓아놓은 생고구마가 양식의 전부였다. 내 주위에 있는 가족과 친지들, 친구들은 모두들 하루 벌어 하루 살기에도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먹는 음식이 군대 짬밥보다 못하고 입고 다니는 옷이 군복보다 못하고 잠자리가 군대 내무반보다 못한 사람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런 사람들에게 면회를 와 달라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나는 고아나 다름없었다. 해가 넘어가고 달이 떠올라도 나는 혼자였다. 눈이 내리고 눈이 그쳐도 혼자였다. 가끔 가다 고참병이 `너는 면회 올 가족도 없냐?'고 물으면 `예…. 부모님이 연로하셔서…' 하면서 말꼬리를 흐릴 수밖에 없었다. 군대에서도 가난한 건 분명 죄였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이 될 만한 사실은, 그 헤아릴 수 없는 매타작과 굶주림 속에서도 1급 현역 입영 대상자로 뽑힐 만큼 튼튼한 몸이 있어, 몸으로 감당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든 해치울 수 있다는 자신감이었다. 그래, 죽기 아니면서 까무러치기다, 이 씹새끼들아. 내 몸으로 때워 주마. 몸으로 할 수 있다면 저 백운봉이라도 번쩍 들어 한강에다 처박아 주마.




http://www.hani.co.kr/section-009094000/home08.html (노동일기2 - 유용주, 한겨레)
http://www.hani.co.kr/section-009093000/home05.html (노동일기 - 유용주,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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