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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참말 / 유용주 시인 본문

유용주

당신의 참말 / 유용주 시인

가이브 2009. 7. 5. 00:47

- 출처 -

 http://www.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357324.html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비가 그치고 써레질 끝낸 논바닥에 찰람찰람 물이 들어찼습니다. 찔레꽃 피고 오동꽃 떨어지자 곧 모내기가 시작되었어요. 오와 열을 맞춘 어린 모들이 흔들리며 뿌리를 내립니다. 그 층층 다랭이 호수 속에는 나무와 풀 그림자가 들어 있고 해와 달과 산과 구름이 한껏 돛폭 부풀려 서쪽 바다를 향해 항해를 하고 있군요. 해오라기 한 쌍 노을에 되비친 자기 모습을 보며 묵언정진에 들어갔으며 바람은 삽을 씻고 돌아가는 늙은 농부의 주름살 계곡으로 쉼 없이 불어갑니다. 흙 묻은 장화를 털고 담배를 빼어 문 황토빛 얼굴에는 땅을 탓하지 않고 평생 삶을 경작해온 흥그런한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많이 굶고 살아온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밥그릇에 대한 경건한 기도가 들어 있습니다. 무엇보다 서럽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 편에 서려 했던 당신의 마음이 들어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보다, 한 그릇 밥 앞에 눈물 흘려본 사람이기에, 밥이야말로 얼마나 치사하고 위대한 참말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기에, 어둠 속에서도 거짓말할 줄 몰랐던, 진실한 말은 오히려 서툴다는 것을 온몸으로 보여준 당신이기에, 어떤 바닥이든 가리지 않고 완벽한 수평을 유지하려는 물의 평등한 말씀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당신은 참 말을 못하는 사람이었지요. 왜냐하면 참말만 골라 했기 때문이지요. 당신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 사람들은 좋은 학교 나온 별 볼 일 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바보라는 별명, 그거 ‘바로 보다’에서 나온 말 아닌가요. 바로 보는 사람은 늘 손해 보기 마련입니다. 이익이나 대차대조표를 그렸다면 진즉에 때려치우고 떠났을 것입니다. 농부만큼 바보가 어디 있겠습니까. 손해나는 장사를 하는 사람이 몇이나 있겠습니까. 질 줄 알면서도 싸우는 선수가 어디 있겠습니까. 삶에서 이기려고 기를 쓰고 덤벼든 우리가 당신을 떠밀었습니다. 더 편안한 삶을 위해 당신을 절벽 아래로 떨어뜨렸습니다.

바야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타박하는 시대입니다. 제 눈의 들보는 걷어내지 못하고 남 눈의 티를 의심하는 세월입니다. 저 하늘에 계신 하눌님과 땅속이 천국인 양 헤집고 노는 땅강아지에 이르기까지 삼천대천세계에서 헛된 죽음은 없는 거지요. 당신이 흘린 피는 물이 되고 불이 되고 공기가 되어 당신을 죽음으로 몰아간 사람들의 몸속으로 스며들 것이니, 여름 비바람, 가을 무서리, 겨울 폭설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흐르고, 세상 이야기가 다 쓰여지고 난 뒤에도 새로운 이야기가 지금 다시 쓰여지고 있듯, 세상 사람들 다 죽어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해도 새로운 생명은 어디선가 꿈틀 일어서듯, 당신의 참말은, 당신의 참행동과 실천은 끝내 다시 시작하는 후세들에게 뿌리내려 울울창창할 것입니다. 한 치 망설임도 없이 뛰어내린 고드름처럼, 삶이란 올가미 앞에 절대 고독을 견디며 매달려왔던 당신의 손을 가만히 만져봅니다. 거친 삶을 살아왔지만 뜻밖에 부드럽군요. 당신이 흘린 눈물, 세상 골목을 빠져나와 아픈 틈을 메우고 강물을 휘돌아 지금 마악 바다와 만나 뜨겁게 끌어안는 모습이 보입니다. 눈물은 말이 태어나기 전, 어머니가 만들어낸 가장 오래된 모국어라는 것을 믿습니다.

유용주 시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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