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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수아비2

가이브 2009. 11. 7. 00:46



긴 머리의 허수아비와 대머리 허수아비가 서 있었습니다.

허수아비 둘은 나란히 양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서로 마주 보지 못했습니다. 눈을 아무리 돌려도 서로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나와 같은 허수아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은 하루에 한 번 알 수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긴 머리의 허수아비를 대머리 허수아비가 볼 수 있었고, 오후가 되면 대머리 허수아비가 긴 머리 허수아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 덕분이었죠. 하지만,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두 허수아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해가 그 모습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한 번씩 바람이 왼쪽에서 불어오면 오른쪽에 있는 대머리 허수아비는 걱정됩니다.
왼쪽에 서 있는 긴 머리 허수아비가 많이 힘드니까요. 오른쪽에서 바람이 불어 올 때면 왼쪽에 서 있는 긴 머리 허수아비도 대머리 허수아비가 걱정됩니다. 바람이 불어도 자기가 흔들리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긴 머리 허수아비는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아주 오랫동안 함께 곁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로 한 번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한 번이라도 고맙다는 말을 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발은 묶여 있고, 입 역시 그려져만 있어서 직접 열 수 없는 허수아비니까요.

그렇게 허수아비 둘은 서로 그렇게 걱정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렀습니다.
저기 멀리 작게 보이는 허수아비들이 하나 둘 모습을 감추기 시작했습니다. 기계가 허수아비들을 밟기 시작했습니다. 허수아비들은 웃는 표정 그대로 쓰러졌습니다. 누구 하나 비명을 지르지 않았습니다. 점점 시끄러운 기계 소리가 가까워지는 듯했습니다.

고요한 밤, 해가 저물고 달이 떴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달이 밝았습니다.
밝은 달은 어두운 밤에 더욱더 빛났습니다. 그날 밤은 다른 밤보다 밝았습니다. 그래서 처음으로 밤에 긴 머리 허수아비는 대머리 허수아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서서히 날이 밝아왔습니다. 대머리 허수아비는 희미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기계 소리가 다시 들렸습니다. 가까이 있는지, 오늘은 더 크게 들렸습니다.

긴 머리 허수아비가 쓰러졌습니다. 처음으로 대머리 허수아비는 긴 머리 허수아비의 웃는 얼굴을 보았습니다. 예뻤습니다. 대머리 허수아비가 그토록 보려고 했던 긴 머리 허수아비의 모습을 본 것입니다. 긴 머리 허수아비도 대머리 허수아비를 보았습니다.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웃음이 자연스레 띠어졌습니다. 그리고 서서히 눈이 멀어졌습니다. 서로 볼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두 허수아비는 기계 덕분에 서로 마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날 밤, 달은 뜨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도 구름이 해를 가렸습니다.
긴 머리의 허수아비와 대머리 허수아비가 없는 하늘은 어두웠습니다. 마치 허수아비들이 없어져서 함께 없어진 것처럼.


-끝




어느 날, 집으로 향하는 버스를 탔다. 문득, 허수아비가 생각났다.
원래는 마주 보는 허수아비였다. 서서히 눈꺼풀이 감기고, 허수아비는
서로 볼 수 없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슬픈 이야기로 바뀌었다.
친구에게 허수아비가 되어주겠다고 말을 했다.
마주 보고 있어야 허수아비가 될 수 있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이 이야기의 두 허수아비처럼, 마주 보고 있지 않아도 허수아비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허수아비들은 언제나 자신을 알리지 않고 그저 서 있을 뿐이니까.
"그저 말없이 들어주는 벗". 진실이라는 의미는 가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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