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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 제제의 마음 친구가 되어줄래? 본문

유용주

꼬마 제제의 마음 친구가 되어줄래?

가이브 2008. 7. 12. 04:01
[아빠가 건네주는 동화책]꼬마 제제의 마음 친구가 되어줄래?
입력: 2008년 06월 20일 18:02:52
▲나의 라임오렌지나무…J M 데 바스콘셀로스 | 한림원


한결아.

비가 내리고 바람이 거세게 불어. 장마가 시작된 모양이야. 개구리 울음소리가 뚝 그치고 그 많던 새들은 집으로 돌아갔나 봐. 커다란 나무들이 비바람에 춤을 추듯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어. 우리 집 지붕에서는 콩타작이 끝난 뒤, 먼지와 흙, 돌을 골라내느라 키질하는 소리가 들리는데 그 소리는 저 먼 남쪽 바다 작은 몽돌밭을 쓸어내리는 파도 소리처럼 들리지 뭐냐. 이럴 때는 지붕도 수많은 이야기를 쏟아내는 옛날 할머니들의 목소리를 닮은 거 같아.

하긴 엊저녁까지 잠 못들게 만든 개구리 합창 소리는 벼를 품고 있는 들판이 쓰는 시고, 숲속에서는 밤새 소쩍새가 피울음 울며 절명시를 쓰지. 뭐, 뭐라고? 그럴 줄 알았어. 바다에서는 당연히 고래가 시인이지. 하늘에서는 별들이 동화를 쓰고, 만 리나 되는 만리포 백사장에서는 조개와 소라고둥이 소설을 쓰고 있어. 아암, 당연히 갯지렁이는 길고 긴 장편 대하소설을 연재하고 있지. 지금 아빠가 쓰고 있는 원고지는 당연히 나무들이 제공한 시화전이고 말고.

여기 다섯살 난 제제라는 아이가 있다. 아빠는 실직하고, 엄마는 방직공장에 나가 시장바구니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들게 일하는 가정에서 태어났어. 그것도 아기 예수가 태어난 날. 안 봐도 그림이 그려지지? 생일날 선물 하나 받을 수 없는 정도로 가난한 집인데 식구는 또 얼마나 많은지. 위로 누나가 넷(제일 큰누나는 부잣집 양녀로 보내졌다)에 거짓말 잘하고 돈을 꾸고 대신 싸워달라고 부탁하는 비겁하고 침대에 오줌이나 질질 싸는 아홉살된 형과 어린 왕자라고 불리는 동생까지 두었으니, 정말 대가족이지?

가난한 집 아이들이 늘 그러하듯 제제는 아주 조숙하고 예민해. 배가 고프면 고플수록 꿈은 불러오거든. ‘마음속의 작은 새’가 떠난 다음부터 생각이 많아지게 돼. 제제는 나무하고 얘기를 하고 글자를 배우지 않았는 데도 신문을 읽고 어른들이나 부르는 노래를 수십 곡을 암송하고 있어. 어린 제제는 끊임없이 장난을 치는데, ‘마음속 작은 악마’의 충동질을 이기지 못하기 때문이야.

예를 들면 고야바 열매 훔쳐 먹기, 남의 집 담 밑에 불 지르기, 고무총으로 유리창 깨기, 방금 심은 나무 뽑기, 고양이에게 구슬 먹이기, 극장 3층에서 오줌 누기, 담임선생에게 선물하기 위해 남의 집 정원에서 꽃 꺾기, 빨랫줄 끊기, 양초 문질러 사람 넘어뜨리기, 스타킹으로 뱀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 놀려 주기, 그물 침대에서 낮잠 자는 에드문트 아저씨 엉덩이에다 불 놓기, 자동차 뒤에 매달리기….

그러니 얼마나 맞았겠니? 허구한 날 동네북이지 뭐냐. 오죽이나 많이 맞았으면 기찻길에 뛰어들어 자살할 생각까지 했으니까. 그런 제제에게도 친구가 있었으니, 밍기뉴(애칭은 슈르르카)라는 오렌지나무와, 포루투카 아저씨야. 두 친구는 다섯살 제제의 몸과 마음을 천사처럼 어루만져 주지, 특히 포루투카 아저씨는 부자인데도 제제의 말을 모두 이해하고 소원을 이루게 해 주지. 그러나 행복도 잠깐, 친구이자 아버지 같았던 아저씨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시자 제제는 죽음보다 깊은 병을 앓게 되는데….

거꾸로 뒤집어서 생각해보면 아버지에게 죽도록 얻어맞은 다음 제제가 하는 절규는 지금 이명박 대통령 할아버지에게 바라는 국민들의 목소리 같아. “죽인다는 거, 제 마음속에서 죽이는 거예요. 그리고는 사랑하기를 그만두는 거예요. 그럼 언젠가는 죽게 되는 거 아니에요?”

<유용주 | 시인>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620180252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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