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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말말. 본문

ㄱㅐ똥철학

말말말.

가이브 2009. 11. 23. 19:35

요즘엔 일에 미치고 싶어서 포스팅을 잘 못한다.
오랜만에 개똥철학(?)이나..

말에 대해.

어릴 때(7살?) 웅변학원엘 간 적이 있다. 친척형이 다니던 학원인 것으로 기억나는데,
앞에서 신나게 큰 소리로 열변을 하더라. 난 당시 주판학원엘 다녔었다. (태권도학원도 잠시-_-)
(7살 때 주판 학원에서 굴렸는데, 국민부로 업글 시켜주던 기억이.. 주판 잘 쳤나보다)

그 형은 어릴 때 웅변 덕분인가, 20년이 지난 지금 말 잘 한다. 나도 만약 웅변학원을 다녔으면, 성격자체가 어려서부터 바뀌었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난 내 과거에 "이렇게 했으면 저렇게 됐을건데.." 따위의 기대나 후회는 '아직까지는' 결코 없다)

여튼.. 국민학교에 들어가서 친구들과 놀며 역시 말이라는 것을 지껄이고 다녔는데, 사실 난 기계와 좀 더 친했었다. 오락실 기계. (지능개발 이라는 타이틀이 늘 붙어있다. 그 당시엔..)
오락을 하면서는 말을 할 필요가 없다. 게임은 정해진 룰 대로 돌아가게 되어있음을 알고 있었을까.

그렇게 오락과 "너무"친하게 지내다, 몇 달간 강제 이격되어 다락방에 몇 달 갖혀 있으면서 말동무가 정말 없어졌던 때, 몇 권의 동화책과 몇 십권의 위인전 등을 읽었다. 이 때, 나의 말수는 많이 줄어들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난 책이 말하는 것들을 들었다. 하지만 듣고 피드백을 날려줄 수가 없다. 책은 듣지를 못했으니까..
그래서 난 책이 말하는 것을 옳다 여겼으리라.. 그 책이 마술책이라면 지금 직업이 마술가가 되었을 수도 있고, 장기, 바둑책이었다면 역시 그 쪽으로 넘어가지 않았을까.. 컴퓨터책은 아니었지만, 난 지금 직업은 컴퓨터쪽이다. 내가 읽었던 책은 모두 "교양"이었다. 신앙이라고 할 수 없는 종교적 성향을 띈 책은 "예수 그리스도"의 위인전이었다. 처음 접하는 그가 위인인지는 잘 몰랐었겠지만, SF성이 아주 짙은 위인전이다. 그의 청년때와 30살 까지는 텅 비어있는 책으로 기억한다. 지면상 생략은 아닌 것 같다. 왜냐면 난 전집을 읽었고, 같은 성향의 다른 위인 99명은 대부분 같은 양의 지면에 싹 다 훑어주었기 때문에.. 여튼 바이블을 안 읽었기 때문에 역시 종교인도 안된 듯 싶다.

몇 달의 짧은 기간에 읽었던 책은, 지금 내 평생에 읽고 있는 책보다 더욱 기억에 남는다. 내용은 기억에 남지 않지만, 사실 그 다락방에서 할 수 있었던 건 오직 책이 말하는 것을 일방적으로 들을 수 밖에 없었다. 한번씩 고모님이 시험까지 치셨으니.. (그럼 강제..였던가...)

그렇게 이사를 하고, 초등학생 고학년 때도 별 말이 없었다. 친구가 많이 없었다. 서먹하고, 난 남에게 먼저 다가가는 스타일이 아니었기 때문에.. 뭐 그래도 몇 명 어울려 놀고 그랬지.

중학교. 중학교 1학년 때는 동네 형 한명이랑 지극히 붙어다녔는데, 그 양반 역시 별 말이 없었다. 중학교 2학년때는 컴퓨터쪽 하는 친구를 만났는데, 역시 그다지 말이 많이 없다. 중3넘어가고, 고등학교 역시 새로운 공간. 그렇게 떠들고 다닐 건수가 없었다.

고등학교 졸업을 앞둔 3학년 말. 진학에 성공은 했는데, 걱정이다. 말도 없고 숫기도 없는 내가 이제 성인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대학가서 술도 먹어야되고 담배도 피우면서 어른짓을 해야되는데, 답이 없네. 당시 택시타고 가다 택시기사님이 그러더라. "니가 고쳐야징.. 누가 못고쳐줘."

대학 들어가고, 역시 혼자다. 이 때, 노력을 미친듯이 했다. (아주 나름대로..) 없는 말도 막 하고, 그러다 보니 사람들이 이상하게 바라본다. 그러니까.. 3차원으로 보더라. "쟤 머리엔 뭐가 들었지?" 하는 식으로. 하지만, 입학 후 노력은 배신하지 않았다. 닫혔던 입이 열렸는데, 아마 "소주님" 덕분이 아닌가 싶다. 내가 들어간 스터디에서는, 5일 한 주에 평균 3-4일은 술을 먹었는데, 초반에는 주변 사람들이 3차원으로 보다가, 그러다가 중반에는 답이 없다는 표정을 계속 짓다가, 몇 달만에 소주병을 세 병 정도 비워주니, 날 서서히 평민으로 보기 시작했다. (술은 대학들어가서 마셔봤다)

그러면서 내게 붙은 별명은 "애늙은이".
딱 20살 맞췄는데, 또래에 맞는 농담 따위도 안하고 현대 문명에는 컴퓨터 외엔 전혀 뒤떨어져 있으니, 그냥 사는 얘기나 늘어놓고 노래 얘기나 벌려놓았더니 저렇게 붙여주었다.

여튼, 이듬해에 군대가고. 군대에서 급격하게 바뀌더니, 전역하고 나오니 새로운 세상이다.
걱정안해도 될 만큼 말이 많아졌다. 

의미없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늘여놓았는데,,

내가 말이 없을 땐 그랬다. "내가 이런말을 해봐야 저 사람은 이렇게 안듣는다" 라고 아예 판단을 내렸었다. (아직도 한번씩 나도 모르게 그런생각을 가지지만) 사람의 본성은 비슷비슷하다 생각했다. 그래도 사람인디.. 뭐 이러면서. 나랑 비슷한 생각을 가지겠지.. 뭐 그러면서.. 늘여놓은 말들은 그들에겐 이상한 외국어로 들렸던 것이다. 그래서 아예 내 말문을 닫았다. 혼자 늘 생각하고 삭히고. 그러다보니 나랑 안 맞는 얘기를 하면 나도 싹 닫아버리는? 그런 사람이 되어버렸네에.

그러다 변하려는 이유는 그래봐야 나도 사회적인 동물이니 부자나 거지나 아무자리 한자리 신문지 깔고 앉아야 겠다 생각한거지. 그래서 3차원 얘기가 나올 정도로 없는말 있는말 아무말이나 대놓고 하고 버릇없이 굴고 바보가 되고 재롱도 부리고 그렇게 떠들다 보니, 말하는 법을 익히게 되었다.

음..
내가 무슨 글을 쓰는거지....

여튼..
슬슬 주위 친구들이 사회에 뼈 한조각, 골수 한방울, 다리품 석말 팔고 다니다 보니, 변화가 있는 듯 했다. 나도 요즘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지만. 살아남기 위한 옹알이. 발버둥. 도리도리.

다 그런건 아니지만, 이상하게 대화를 나누면서 "말 자체"에 대해서 논쟁하는 의미는 정말 필요없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말을 하는 자체는 국어 공부를 어떻게 했냐에 따라서 (학습하는 표현법이기 때문에) 전달이 잘 될 수도, 잘못 될 수도 있다. 이 점을 생각하지 않으면 쓸데 없이 작은 말 하나 가지고 큰 오해를 사게 된다. 해명도 잘 안된다. 해명해봐야 더더욱 구덩이로 빠지는 경우가 많다. 뭐 사실 말 의미가지고 그런 것 만은 아닐 수 있다. 생각의 차이로, 받아들일 때 다르게 비껴갈 수도 있겠지..

포도밭에서 삿갓을 고쳐매지 말고,
참외밭에서 신을 고쳐신지 말라

내가 아직 기억하는 명심보감에 나오는 말이 있는데, 요즘 들어선 이게 부정적이다. 보이는 것에 의해 오해는 받을 수 있다만, 오해일 뿐, 진심을 모르는 것 아닌가..

포도밭에서 고쳐맬 때 뭐라하지말고, 포도를 딸 때 뭐라해야되는게 아닐까.
참외를 딸 때 왜 따냐고 해야지, 참외밭에서 급하게 신발을 만질 수 있지 않겠냐는 말이다.

근데..
한 말문이 틔여서 5년간 막말하고 다니다 보니, 요즘 자제하려고 해도 잘 안되는 내 모습을 발견한다. 말이 너무 많아졌다. 

말이 많고 작고를 떠나서,
중요한건 말로 표현하든 아니든 그 사람의 보이지 않는 마음이 더욱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말로 오해를 받아도 너무 상처받지 말길.. 나처럼.. ㅡ.ㅡ

슬픈 현실이다. 낼 모래 서른인데...

괜히 태어났어.. 괜히 태어났어.. 이럴줄 알았으면 안 태어날걸..(남보원 버전)


진짜 갈겨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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