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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GuyV's lIfe sTyle.
이틀을 굶으며, 무릎을 감싸앉고 깍지낀 손이 수도 없이 풀리며 잠을 잔 후, 다시 거리로 향했다. 가만히 서 있거나 쪼그려 앉기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았다. 하얀 햇살에 어지러움을 느끼며 하늘이 노래지는 것을 느낀건 그 때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친구집 어귀 왼쪽 골목을 지날 때, 고개 숙여 걷는 눈 앞의, 누군가가 두어번 베어물은 입자국이 선명한, 사람이 기계되어 깎은 듯한 중고품 고로게를 보고 발걸음을 멈췄다. 안방 옷장 깊숙히 있는 백원짜리 동전이 가득 든 사기단지에 손을 댄 후에나, 엄마 심부름으로 특히 무거운 비닐봉지를 들고오 난 후에나 떨릴 법한 악마와 천사의 마음을 가진 손이 또 떨렸다. 주인없는 가게에서 도둑질 하듯 자신을 집어드는 주인 없는 고로게는 깡마르고 다리가 긴 소년이 처량해 보였..
날아가던 참새가 어깨에 사뿐히 앉았다 날아간다. 흐물흐물 지렁이 한 마리가 발목에 똬리를 한 바퀴 꼬고 지나간다. 시원한 바람이 옷깃에서 옷깃 사이로 스쳐 지나갔다. 바람이 실어온 꽃씨가 코를 간지럽히고는 바람과 함께 날아간다. 얇고 가벼운 빗물이 머리에 떨어져 온 몸을 더듬으며 땅으로 흐른다. 허수아비는 자연이 잠시 쉬어가는 무료 휴게소이다.
난 완벽하게 둥근 구슬이다. 굴렀다. 굴러래서 굴렀다. 한참을 구르는데, 멈추랬다. 구르는 것을 멈췄다. 보이지 않는 바람이 나를 굴리고 뚜렷히 보이는 돌이 나를 세웠다. 네모난 주사위처럼 의지로 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안간힘을 썼다. 멈추려고, 움직이려고 온 몸에 정신을 집중했다. 난 바람과 돌에 반항하는 구슬이다.
긴 머리의 허수아비와 대머리 허수아비가 서 있었습니다. 허수아비 둘은 나란히 양옆에 서 있었기 때문에 서로 마주 보지 못했습니다. 눈을 아무리 돌려도 서로 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나와 같은 허수아비가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 사실은 하루에 한 번 알 수 있습니다. 아침이 되면 긴 머리의 허수아비를 대머리 허수아비가 볼 수 있었고, 오후가 되면 대머리 허수아비가 긴 머리 허수아비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림자 덕분이었죠. 하지만, 날이 흐리거나 비가 오는 날에는 볼 수 없었습니다. 두 허수아비의 머리 위에 떠 있는 해가 그 모습을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한 번씩 바람이 왼쪽에서 불어오면 오른쪽에 있는 대머리 허수아비는 걱정됩니다. 왼쪽에 서 있는 긴 머리 허수아비가 많이 힘드니까요. ..
눈이 부시게 펼쳐진 밭을 지나치다 어린 참새는 흥미로운 것을 발견하고 잽싸게 내려갔다. 어린 참새는 뒤따라온 엄마에게 물어봤다. " 엄마, 이건 뭐야? " " 허수아비라고 한단다. 우리를 쫒으려고 사람들이 세워놓은 녀석이지. " " 우리를 쫒는다고? 어떻게? " " 그냥 이렇게 가만히 서 있으면서~ " " 에이~ 움직이지도 못하는데? 소리내는 것도 아니고. 봐, 이렇게 앉아 있어도 웃기만 하네 뭐. " 엄마는 웃으며 어린 참새에게 부리로 머리를 살짝 쪼았다. "이제 집에 가자." 날이 어두워지고 새끼 참새는 어두운 밤 다시 그 허수아비를 찾아보기로 했다. 허수아비는 역시 아무런 미동없이 그 자리 거기 서 있었다. 쪼르르 내려앉은 참새는 허수아비에게 나지막하게 말을 걸었다. " 허수아비야. " 하지만 허수..
[2008.01.08] 시에서 조금 떨어진 시골마을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작지만 분교도 아닌 중학교 건물이 신축인지, 페인트만 다시 칠했는지 원색으로 깔끔하다. 층층히 분홍색으로 칠해진 예닐곱 칸 스탠드는 한적하고, 텅 빈 한낮의 운동장도 방학이라 한적하다. 17분이 남았다고 가리키던 정류장 간판이 이내 7분으로 바뀐다. 저쪽에서 터벅터벅 휴대폰을 쥐고 아주머니 한 분이 걸어오신다. 이 동네에 사는가보다. 살짝 날 보며 물어본다. "버스가 언제쯤 도착할까예?" 나는 전광판을 주시하듯 잠시 보며 "저기 7분이라고 가리키네요." 짧게 대답한다. 담배를 꺼내어 피다 꺼트리고 정류장 벤치에 앉으니, 서 있던 아주머니는 앉으며 지나가는 말로 물어본다. "학생이신가 보네예" 짧은시간에 미소가 띈다. 직장생활 3년...
[2007.03.18] 퇴근시간.. 늘 타는 버스는 '뒤로 좀 타세요'하며 차에 오르려는 승객을 보챈다. 채 10명도 안되지만 승객이 올라타기 무섭게 문을 닫고는 강한 클러치소리를 낸다. 다행히 뚫려있는 큰 도로. 곧 막힐 것이지 만 얼른 달린다. 신호받은 차가 앞에 보이면 끝까지 다가가서 급히 세워 서 있는 사람이 불편해지기도 하지만 기사는 아량곳하지 않았다. -------------------------------- 어디보자.. 금요일에 7시 15분 운행. 엊그제 확인했던 운행표를 다시한번 더 확인하고 커피를 뽑아든다. 저쪽에서 운행을 마친 버스가 뉘엇뉘엇 기어들어온다. 박기사였다. 짐작하며 운행표를 바라보니, 역시나 오늘 막차는 박기사가 하려나보다. 34살의 나이. 아직 결혼하지 않은 총각이지만, ..
길을 걷다가 잠깐 멈췄다. 부스럭 소리가 들렸다. 가로등 뿌려진 전봇대 밑에서 쓰레기봉지가 이리저리 흔들린다. 갑자기 툭 하고 발길에 걸린 돌 때문에 몸이 앞으로 기울어진다. 철썩.. 넘어졌다. 빠르게 일어난다. 지나친 쓰레기봉지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리며 그 녀석의 발소리가 멀어진다. 둔탁한 구두가 시멘 바닥을 딛는 소리가 요란하다. 두 세 걸음을 걷다 다시 뒤돌아 온다. 넘어지며 흘린 봉지를 주워들었다. 봉지가 펼쳐지며 내는 소리 역시 요란하다. 그리고 다시 가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개 짖는 소리가 들린다. 늘 이시간에 여기를 지날 때면 들리는 소리다. 시끄러우면서도 경쾌하다. 누군가가 지나감을 알려준다. 홀로 걷는 누군가에게 말을 건다. 개는 누가 지나가는지 모른다. 보이지도 않는 철문을 대고 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