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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섬에 살고 있단다 본문

유용주

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섬에 살고 있단다

가이브 2008. 7. 29. 00:24
[아빠가 건네주는 그림책]사람들은 누구나 자신의 섬에 살고 있단다
입력: 2008년 07월 25일 17:32:41
▲열 여섯의 섬…한창훈 | 사계절



한결아,

어제 저녁 늦게까지 작업을 하고 뒤척거리다 잠이 들었다. 습하고 더운 장마철 무겁고 어두운 꿈자리를 헤매다 깨어났는데 비가 내리고 있는 거라. 잠의 바다에서 미처 상륙하지 못한 아빠는 가만히 누워 빗소리를 들을 수밖에 없었는데 그 소리는 이십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그러니까 네 할머니)가 밭일을 마치고 자박자박 집으로 돌아오는 발자국 소리 같고, 조용조용 밥을 안치고, 찌개를 끓이고, 호박전을 부치는 소리 같고, 달걀 프라이 할 때 기름 튀는 소리 같고, 투덜거리다 낮잠 깬 막둥이 달래는 소리 같기도 한 거야.

아빠는 일어나지도 않고 얇은 여름 이불을 동그랗게 말아 고치가 되기 직전 누에가 되어 저 빗줄기를 따라 하염없이 걷기로 했다. 강아지풀이나 물풀들 흐느끼는 개울을 지나 이무기가 사는 용소를 건너면 곧 은어 떼 살랑대는 큰 강이 나오지. 대숲과 아카시 숲을 따라 버섯 같은 마을 앞에서 물줄기는 이내 바다만큼이나 넓어져, 재첩이 모래톱에서 꿈을 꾸고, 숭어 떼가 은빛 비늘을 채고 날아오르는 바다에 다다른다. 어머니는 바닷가 작은 마을에서 태어나셨어. 그러니까 아빠도 바다의 자식이란다. 너는 막 지느러미가 생기기 시작한 새끼 물고기인 거고.

이 책의 주인공 서이는 중학교 3학년, 열여섯살 난 아이다. 어머니와 언니들은 서이가 아주 어렸을 때 섬이 싫다고 떠나갔어. 하긴 섬이라는 곳이 겉으로 봐서는 아름답지만 어떻게 보면 커다란 감옥일 수도 있겠다. 실제로 아빠는 경험을 했단다. 부서지는 파도, 울창한 동백숲, 은모래 금모래빛 백사장, 갈매기를 몰고 다니는 고깃배, 언제나 한 자리에서 밤바다를 밝혀 주는 등대, 그 무엇보다도 근육질의 어부를 닮아 튀어 오르는 싱싱한 고기들…. 이런 그림 같은 풍경은 사나흘 지나면 정물화로 자리잡고, 어떤 사람은 두고 온 육지가 그리워 하염없이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고 있지. 또 한 부류는 처음부터 끝까지 줄창 나게 술잔을 부여잡고 있는 거라. 마치 마시지 않으면 삶이 쓸쓸해 견딜 수 없다는 술주정뱅이처럼 말이야.

하여튼, 어머니가 떠난 다음 숨쉴 때만 빼놓고 술잔을 잡고 있는 아빠를 모시고 어린 서이는, 밥하고 빨래하고 청소하고 공부하고, 학교에 나가는 소녀 가장이었어. 하루빨리 지긋지긋한 섬에서 빠져나갈 궁리를 하면서 말이지.

그런데 영화처럼 한 여자가 나타난 거야. 바이올리니스트였어. 이 여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남자가 갑자기 죽고 난 뒤, 인생이 허무해 칠년 동안이나 세상 구석구석을 돌아다닌 방랑자였어. 그러니까 서이가 그렇게 바라던, 꿈꾸고 있던 삶을 대신 살아온 사람이었지. 얼마나 반가웠겠니? 늘 함께 바닷가를 거닐며 음악을 듣고 사는 일과 죽는 일과 사랑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했단다. 열여섯, 서이 나이에 가장 행복한 순간이 지나가고 있는데 엄마보다 서이를 더 아끼면서 키우고 뒷바라지했던 큰이모가 이 여자가 좋아하는 소라를 잡으러 바다로 나갔다가 갑자기 돌아가신 거야. 저 빗물은 큰이모가 돌아가시고 난 뒤, 바닷가에서 통곡했던 서이의 눈물 아닐까. 괴롭고 외롭고 쓸쓸하고 슬픈 일을 당한 사람들이 몸 안에 수분이 다 빠져나갈 때까지 흘린 피울음 아니었을까.

<시리즈 끝>

<유용주 | 시인>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725173241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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