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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시작, GuyV's lIfe sTyle.
새순 -이외수 본문
몰래 가져와봅니다.. 문제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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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순1
퇴근 무렵이었다.
서울의 모든 정류장들이 아수라장으로 돌변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정류장이건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탈진해 있었다. 회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리니.오늘도 파김치가 되어 아무런 불평없이 집으로 돌아가리라. 오늘도 마누라는 침대가 꺼지도록 한숨을 쉬리라. 오늘도 치욕적인 발기부전증은 치유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몰수된 젊은 날의 꿈들은 반환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실종된 자아는 되돌아 오지 않으리라.오늘도 회사가 그대 입에 풀칠을 해 주나니. 회사에 날마다 경배하리라. 그들의 얼굴에 쓰여 있는 퇴근일지들이었다.
종로의 번화가.
지하도 입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택시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끝이 까마득해 보였다. 끊임없이 지하도에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출몰해서 계속적으로 줄의 길이를 연장시키고 있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택시를 잡기가 사막 한 복판에서 팥빙수를 구하기보다 힘들었다. 한 달 전부터 택시 합승 단속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도대체 누가 택시 합승 단속령을 생각해 내었을까요?"
"택시 합승을 못하도록 만들면 자가용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거요."
"그게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름과 직책을 밝힐 수는 없어도 높은 분들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 않겠소."
"서민들은 죽어도 좋다는 식이로군요."
"서민들이 추앙하는 정의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서민들이 숭배하는 양심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소."
"벌써 한 달째 비가 내리지 않는군요."
"비도 이런 도시에는 내리고 싶지 않을 거요."
여름이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하늘이 매연으로 희뿌옇게 흐려 있었다. 기관지염에 걸린 해가 핼쑥해진 얼굴로 빌딩 모서리에 이마를 기댄 채 빈혈을 앓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갑자기 지하도 쪽에서 절박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하도 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작은 체구의 사내 아이였다.
국민학교 사 학년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다.
아이는 지하도를 빠져 나와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군중들 사이에 몸을 숨기며 몇 번씩이나 살려 달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간절한 목소리였다. 아이는 가슴에 신문 뭉치를 끌어안고 있었다.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청년 하나가 아이 뒤를 바싹 추격하고 있었다. 청년은 스물 네 살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다. 별로 질이 좋지 않은 부류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차림새였다. 아이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감으로 사색이 된 채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급적이면 내게 어떤 실리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을 때 도시의 현대인은 타인의 문제에 자신을 개입시키는 번거로움을 결코 달가와 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 도시의 현대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결국 청년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덜미를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싸가지 없는 뼉새끼."
청년은 해독하기 어려운 용어로 조합된 욕설을 뱉아내며 세찬 발길질로 아이의 복부를 잔혹하게 내지르고 있었다. 청년은 청바지에 러닝 셔츠 차림이었다. 양쪽 팔뚝에 문신과 칼자국들이 파충류처럼 흉측한 형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작은 몸을 새우처럼 오그라뜨리며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니가 토까면 어디까지 토깔 거야."
청년의 발길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공포와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정말로 아이를 죽여버리고 말 것 같았다. 아이의 얼굴은 이제 피범벅으로 변해 있었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오래도록 거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한참 동안 매질을 당하던 아이는 이제 탈진해 버렸는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살려 달라는 말만 주문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문 뭉치만은 두 팔로 다부지게 끌어안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의 밥줄인 모양이었다. 군중들은 의식적으로 아이의 눈빛을 외면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비굴함은 곧 현명함이라는 등식을 진리처럼 신봉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런 감정도 표출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아이를 때려 죽이든 밟아 죽이든 절대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애써 공포심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까지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군중들 뿐만 아니라 지나 다니는 행인들도 매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멀리서부터 딴전을 피우면서 현장을 못 본 척 피해 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 하나가 나타나서는 의연한 자태로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은 손에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칠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별로 힘을 쓸만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은 차마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보게 젊은이."
노인이 청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철모르는 어린애 아닌가. 사람들 이목도 있고 하니 이쯤에서 젊은이가 그만 참으시게나."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근엄성도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젊은이들은 누구의 말이든 근엄성이 내포되어 있으면 거부감을 느끼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은 노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벌써 오래 전에 도덕과 양심이 이 세상에서 폐기처분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어째서 어른이 하는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했는가.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아직도 청년의 발길질은 쉽게 거두어질 태세가 아니었다.
"겁대가리 없이 내 구역에 들어와서 몰래 신문을 팔아먹다니. 너 도대체 어떤 씹새이 밑에서 시다이 쪼는 뼉새끼야. 대갈통을 박살내기 전에 빨리 불어."
청년이 아이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내뱉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아이는 오래 전부터 상습적으로 청년의 구역에 몰래 잠입해서 신문을 팔았고 몇 달 간이나 이를 벼르고 있던 청년에게 오늘에야 덜미를 잡히게 되었으며 필시 아이를 조종하는 왕초뻘이 있을 터인즉 대갈통이 박살나기 전에 빨리 이실직고하라는 매질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터지면서도 끝끝내 이실직고하지는 않았다. 청년의 발길질은 더욱 광폭해지고 있었다.
"여보게 젊은이."
노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청년의 발길질을 지팡이로 저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정말로 어린 목숨 하나 초상 내고 말겠네."
노인의 얼굴에는 조금씩 한기가 서리고 있었다.
"이거 어디서 나타난 노털인데 자꾸 귀찮게 구는 거야. 쓰벌."
청년이 포악스럽게 노인에게 눈을 부라려 보였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군중들은 아까보다 한결 더 위축된 표정으로 못 본 척 딴전들을 피우고 있었다. 노인과 아이가 자기들 곁에서 한꺼번에 맞아 죽는 불상사가 생겨도 오로지 택시를 잡는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보아하니 영웅호걸이 되기는 그른 싹수로다."
노인이 참으로 측은해 보인다는 표정으로 청년을 보면서 중얼거린 말이었다.
"이 노털이 누구 앞에서 공자님 좆밥 같은 썰을 까고 있는 거야. 저리 꺼져. 쓰벌."
청년이 오만불손한 태도로 왈칵 노인의 가슴팍을 떠밀고 있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는 있으나 사람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축생이로다."
마침내 노인의 얼굴에 서슬 푸른 노기가 서리고 있었다.
"저게 보이는가."
노인이 천천히 지팡이를 쳐들어 보이고 있었다.
"자네 같은 축생의 눈에는 필시 저게 보이지 않겠지. 만약 자네가 영웅호걸이 될만한 재목이라면 저게 보이지 않을 턱이 없지. 대답해 보게. 자네 눈에는 저게 보이는가."
노인의 지팡이는 청년의 머리 위 어딘가를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군중들의 시선도 은밀하게 노인의 지팡이를 곁눈질로 따라가고 있었다.
"영웅호걸의 눈에는 저게 보이더라도 자네 같은 축생의 눈에는 저게 보이지 않을 게야."
노인의 목소리에는 청년에 대한 경멸과 조소가 내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청년은 노골적으로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을 드러내 보이면서 노인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영웅호걸의 반열에 끼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청년의 의식을 순간적으로 사로잡았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노인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텅빈 하늘 뿐이었다.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 거야. 쓰..."
청년은 말끝마다 쓰벌이라는 단어를 종결부호로 사용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였다. 청년이 쓰벌이라는 종결부호를 꺼내는 순간 노인의 지팡이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따악.
종결부호는 종결되지 않았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사태였다. 청년이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 쥐고 슬로우 비디오로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따악 하는 소리 한번으로 모든 상황이 종결되고 있었다. 잠시 써늘한 정적이 주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군중들이 놀라움에 찬 눈길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놈 같으니."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면서 다시 의연한 걸음걸이로 지하도를 향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군중들은 아직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표정들이었다. 그때였다.
"죽어라. 개새끼."
팔다리가 부러졌거나 숨이 넘어가버린 줄로 알았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쓰러져 있는 청년의 대갈통을 축구공처럼 세차게 걷어차 주고는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잽싸게 도로 건너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저 녀석 멀쩡하군요."
"엄살이었나."
"그토록 직사하게 얻어 터지고도 끄떡이 없네요."
"폭력에는 이력이 났겠지요."
"아까는 저 녀석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만약 노인네까지 봉변을 당했더라면 나도 가만 있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도대체 경찰들은 왜 이런 인간 쓰레기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지 모르겠어요."
"교통위반 단속 하느라고 바빠서 그럴 겁니다."
그제서야 군중들은 다소 불안감이 해소된 얼굴로 잡담들을 나누는 여유를 배당받게 되었다. 달짝지근한 해방감이 군중들의 얼굴에 설탕물처럼 발라져 있었다. 그러나 군중들의 얼굴에 설탕물처럼 발라져 있던 해방감은 별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불과 십 여 분도 못 되어 군중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어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쓰러져 있던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군중들은 다시 처음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오로지 택시를 기다리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으며 곁에서일어난 사태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어 본 적이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이제 얼굴에 발라져 있던 설탕물은 모골을 적시는 식은땀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씹새이야. 아까 그 노털 어디로 갔어. 바른 대로 불지 않으면 오늘 줄초상 나는 줄 알아. 쓰벌."
청년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군중들을 아무나 한 사람씩 선정해서 멱살을 틀어잡고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대라고 포악스러운 기세로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군중들 사이에 매우 놀라운 현상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었다. 멱살을 틀어 잡힌 사람들은 누구나 겁에 질린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킬 때는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손가락으로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인이 떠나고 난 다음 군중들의 가슴밭에 양심이라는 이름의 새순 하나가 자기 손가락 만한 크기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증거였다.
===============
내게는 소수의 문하생들이 있다
모두 문학에 인생을 걸고 도제식으로 공부하는 젊은이들이다
수제자는 서울의 모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데뷰를 했고
내 문하에서 도제식 수업을 쌓은 지 십 년이 넘었다
나머지 문하생들도 소정의 연수과정을 이수하고
상주연수생으로 들어와 기초적인 공부를 철저하게 다진 다음
사회로 진출해서 나름대로의 습작과정을 거치고 있다
문학은 달콤한 막대사탕이 아니다
일단 상주연수생으로 영입되는 순간부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특공대 과정을 방불케 하는 각양각색의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도제식의 특성이다
나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자기소멸을 강요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자신을 철저하게 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을 소멸시켜 본 적이 없는 자는
만물을 사랑할 바탕을 얻기 힘들고
만물을 사랑할 바탕을 얻기 힘들면
문인으로서의 자격도 함량미달일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문하생들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은
기특함을 넘어서 거룩함까지 느끼게 만드는 수준에 달해 있다
마음이 착하다고 아무나 넘볼 수준도 아니고
재능이 있다고 아무나 넘볼 수준도 아니다
홈페이지 공지를 보고 몇 명의 상주연수생 지원자들이 신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 상주연수생이 될만한 재목이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대부분의 신청자들이 문학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문학을 무슨 도피의 수단이나 위안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신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문학을 그대 인생의 간이역으로 생각지 말고
문학을 그대 인생의 종착지로 생각하라
(문학은 달콤한 막대사탕이 아니다.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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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憂 石
녹전碌田 김평욱金平旭은 마흔 두 살에 결혼해서 슬하에 다섯 살 난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는 탐석광探石狂이었다. 명석을 찾아서 허구한 날을 땅바닥만 내려다 보며 전국을 누비다 보니 자연히 결혼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가정을 돌보지는 않았다. 오로지 탐석에만 열중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얼굴을 네 번밖에 대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된 연후로 집에 들어 간 적이 일 년에 한 번 꼴도 못 되는 셈이었다. 누가 가정에 대해서 물으면 언제나 함구무언이었다. 마누라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고 아이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다행스럽게도 경제적으로는 그리 쪼들리는 편이 아니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얼마간의 재산도 있는 데다 마누라가 직장생활을 해서 벌어 오는 돈도 있었다. 단지 무관심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가 주관하고 있는 탐석회의 회원들은 가족들조차 팽개치고 탐석에만 몰두하는 그의 열의를 귀감의 표본이나 되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탐석을 통해서 도에 이르고자 하는 수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모두들 흉내를 내지 못해 조바심이 나 있을 정도였다. 마누라들이 그 사실을 알면 암살이라도 모의하지 않을까 자못 걱정이 앞설 지경이었다.
좋은 돌을 만나기란 좋은 마누라를 만나기보다 몇 배나 힘든 법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수집해 놓은 돌들은 모두가 수준급이었다. 백과사전이나 수석입문서에 명석의표본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들도 한 두 점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돌에 관한 전문지식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몇 날 몇 밤이라도 지치지 않고 떠들어 댈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해우석解憂石에 관한 말만 나오면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번에 기가 죽어 버린 표정으로 탄식 같은 한숨만 길게 내뱉을 뿐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당解憂堂이라고 지칭하는데 화장실이 일만근심을 덜어준다는 연유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해우라는 단어는 해탈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였다. 따라서 해우석은 그대로 해탈석이나 다름이없었다. 보기만 하면 일만근심을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 돌. 탐석을 생활의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게 되는돌. 그는 이 세상에 반드시 그런 돌이 존재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얼음이 얼고 있었다. 그는 도계에서 산수경석山水景石 한 점을 건진 것으로 만족하고 올해의 탐석을 모두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오석이었다. 경도도 높고 빛깔도 짙었다. 적당히 균형 잡힌 두 개의 산봉우리 사이로 하얀 폭포가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제법 빠지지 않는 운치를 가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생각대로 그의 마누라는 볼이 부어 있었다. 아이도 서먹서먹해 하는 표정이었다. 멀찍이서 그의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돌은 차츰 윤기를 드러내며 선명한 빛깔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몇 십분이 지나자 아이는 서먹서먹함이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곁에까지 바싹 접근해서 호기심이 서린 표정으로 그의 작업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빠. 그거 뭐예요."
한참만에 아이가 도계에서 탐석해 온 산수경석을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돌이란다."
그는 아이가 자신이 탐석해 온 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반가움을 느끼며 호기있는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그거 돌 아니에요."
그러나 아이는 완강하게 도리질을 해 보였다.
“그럼 이게 뭐지."
“몰라요."
“이게 진짜 돌이야."
“아니에요."
아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버렸는데 그는 줄곧 왜 아이가 자신이 탐석해 온 산수경석을 돌이 아니라고 우겼는지 의아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처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서 아이가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의아함은 순식간에 충격으로 뒤바뀌면서 지금까지 그가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던 관념의 벽을 한꺼번에 허물어 버리는 사태를 유발시켰다.
“이게 돌이예요."
아이의 손에는 길바닥에 굴러 다니는 작은 돌멩이들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너무 돌에 대해서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야가 확 트여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아이의 앙증맞은 손아귀를 주시하면서 자신이 너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돌을 편애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전국을 헤매면서 찾아다닌 돌들은 아이의 말대로 진정한 돌이 아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이의 손에 쥐어져 있는 저 평범한 잡석이야말로 진정한 돌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로소 이 세상 모든 돌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동안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 보면서 그는 마침내 자신의 해우석을 찾아내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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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순
李 外 秀
퇴근 무렵이었다.
서울의 모든 정류장들이 아수라장으로 돌변하는 시간이었다. 어느 정류장이건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모두들 탈진해 있었다. 회사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리니.오늘도 파김치가 되어 아무런 불평없이 집으로 돌아가리라. 오늘도 마누라는 침대가 꺼지도록 한숨을 쉬리라. 오늘도 치욕적인 발기부전증은 치유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몰수된 젊은 날의 꿈들은 반환되지 않으리라. 오늘도 실종된 자아는 되돌아 오지 않으리라.오늘도 회사가 그대 입에 풀칠을 해 주나니. 회사에 날마다 경배하리라. 그들의 얼굴에 쓰여 있는 퇴근일지들이었다.
종로의 번화가.
지하도 입구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택시 정류장에는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다. 끝이 까마득해 보였다. 끊임없이 지하도에서 사람들이 무더기로 출몰해서 계속적으로 줄의 길이를 연장시키고 있었다. 서울 한 복판에서 택시를 잡기가 사막 한 복판에서 팥빙수를 구하기보다 힘들었다. 한 달 전부터 택시 합승 단속령이 내려졌기 때문에 생겨난 현상이었다.
"도대체 누가 택시 합승 단속령을 생각해 내었을까요?"
"택시 합승을 못하도록 만들면 자가용이 잘 팔린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일 거요."
"그게 어떤 사람들입니까."
"이름과 직책을 밝힐 수는 없어도 높은 분들이라는 사실은 확실하지 않겠소."
"서민들은 죽어도 좋다는 식이로군요."
"서민들이 추앙하는 정의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고 서민들이 숭배하는 양심도 이미 오래 전에 죽었소."
"벌써 한 달째 비가 내리지 않는군요."
"비도 이런 도시에는 내리고 싶지 않을 거요."
여름이었다. 바람 한 점 없었다. 하늘이 매연으로 희뿌옇게 흐려 있었다. 기관지염에 걸린 해가 핼쑥해진 얼굴로 빌딩 모서리에 이마를 기댄 채 빈혈을 앓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갑자기 지하도 쪽에서 절박한 비명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아이의 목소리였다. 택시를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지하도 쪽으로 집중되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작은 체구의 사내 아이였다.
국민학교 사 학년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다.
아이는 지하도를 빠져 나와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군중들 사이에 몸을 숨기며 몇 번씩이나 살려 달라는 말을 되풀이하고 있었다.간절한 목소리였다. 아이는 가슴에 신문 뭉치를 끌어안고 있었다. 인상이 험악해 보이는 청년 하나가 아이 뒤를 바싹 추격하고 있었다. 청년은 스물 네 살쯤 되어 보이는 나이였다. 별로 질이 좋지 않은 부류임을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차림새였다. 아이의 얼굴은 공포와 절망감으로 사색이 된 채 일그러져 있었다. 그러나 아이를 도와주기 위해 나서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가급적이면 내게 어떤 실리가 확실히 보장되지 않을 때 도시의 현대인은 타인의 문제에 자신을 개입시키는 번거로움을 결코 달가와 하지 않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택시를 잡기 위해 그토록 많은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고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 도시의 현대인이 아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이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한 채 결국 청년의 우악스러운 손아귀에 덜미를 잡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런 싸가지 없는 뼉새끼."
청년은 해독하기 어려운 용어로 조합된 욕설을 뱉아내며 세찬 발길질로 아이의 복부를 잔혹하게 내지르고 있었다. 청년은 청바지에 러닝 셔츠 차림이었다. 양쪽 팔뚝에 문신과 칼자국들이 파충류처럼 흉측한 형상으로 꿈틀거리고 있었다. 아이는 작은 몸을 새우처럼 오그라뜨리며 길바닥에 나뒹굴고 있었다.
"니가 토까면 어디까지 토깔 거야."
청년의 발길질은 계속되고 있었다. 아이의 얼굴은 공포와 고통으로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다. 그대로 내버려두면 정말로 아이를 죽여버리고 말 것 같았다. 아이의 얼굴은 이제 피범벅으로 변해 있었다. 처절한 비명소리가 오래도록 거리를 뒤흔들고 있었다.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살려 주세요."
한참 동안 매질을 당하던 아이는 이제 탈진해 버렸는지 다 죽어 가는 목소리로 살려 달라는 말만 주문처럼 되풀이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도 신문 뭉치만은 두 팔로 다부지게 끌어안고 있었다. 아마도 아이의 밥줄인 모양이었다. 군중들은 의식적으로 아이의 눈빛을 외면하고 있었다. 대다수가 비굴함은 곧 현명함이라는 등식을 진리처럼 신봉하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아무런 감정도 표출하지 않겠다는 결의가 얼굴에 역력히 드러나 있었다. 아이를 때려 죽이든 밟아 죽이든 절대로 관여하지 않겠다는 표정들이었다. 그러나 애써 공포심을 억누르고 있다는 사실까지 감추지는 못하고 있었다. 택시를 기다리는 군중들 뿐만 아니라 지나 다니는 행인들도 매정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멀리서부터 딴전을 피우면서 현장을 못 본 척 피해 가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두루마기 차림의 노인 하나가 나타나서는 의연한 자태로 그쪽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노인은 손에 기다란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 칠순은 족히 넘어 보이는 얼굴이었다. 별로 힘을 쓸만한 모습도 아니었다. 그러나 노인은 차마 현장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여보게 젊은이."
노인이 청년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겠으나 아직 철모르는 어린애 아닌가. 사람들 이목도 있고 하니 이쯤에서 젊은이가 그만 참으시게나."
부드러운 목소리였으나 근엄성도 내포되어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젊은이들은 누구의 말이든 근엄성이 내포되어 있으면 거부감을 느끼는 속성을 가지고 있었다. 청년은 노인의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노인은 벌써 오래 전에 도덕과 양심이 이 세상에서 폐기처분되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음이 분명해 보였다. 어째서 어른이 하는 말을 들은 척도 하지 않는 세상이 도래했는가.노인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는 표정이었다. 아직도 청년의 발길질은 쉽게 거두어질 태세가 아니었다.
"겁대가리 없이 내 구역에 들어와서 몰래 신문을 팔아먹다니. 너 도대체 어떤 씹새이 밑에서 시다이 쪼는 뼉새끼야. 대갈통을 박살내기 전에 빨리 불어."
청년이 아이에게 폭행을 가하면서 내뱉는 말들을 종합해 보면 아이는 오래 전부터 상습적으로 청년의 구역에 몰래 잠입해서 신문을 팔았고 몇 달 간이나 이를 벼르고 있던 청년에게 오늘에야 덜미를 잡히게 되었으며 필시 아이를 조종하는 왕초뻘이 있을 터인즉 대갈통이 박살나기 전에 빨리 이실직고하라는 매질이었다. 그러나 아이는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터지면서도 끝끝내 이실직고하지는 않았다. 청년의 발길질은 더욱 광폭해지고 있었다.
"여보게 젊은이."
노인이 더 이상 참지 못하겠다는 듯 청년의 발길질을 지팡이로 저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는 정말로 어린 목숨 하나 초상 내고 말겠네."
노인의 얼굴에는 조금씩 한기가 서리고 있었다.
"이거 어디서 나타난 노털인데 자꾸 귀찮게 구는 거야. 쓰벌."
청년이 포악스럽게 노인에게 눈을 부라려 보였다.
장사진을 이루고 있는 군중들은 아까보다 한결 더 위축된 표정으로 못 본 척 딴전들을 피우고 있었다. 노인과 아이가 자기들 곁에서 한꺼번에 맞아 죽는 불상사가 생겨도 오로지 택시를 잡는 일에만 전념하겠다는 표정들이었다.
"보아하니 영웅호걸이 되기는 그른 싹수로다."
노인이 참으로 측은해 보인다는 표정으로 청년을 보면서 중얼거린 말이었다.
"이 노털이 누구 앞에서 공자님 좆밥 같은 썰을 까고 있는 거야. 저리 꺼져. 쓰벌."
청년이 오만불손한 태도로 왈칵 노인의 가슴팍을 떠밀고 있었다.
"사람의 탈을 쓰고는 있으나 사람의 말을 알아 듣지 못하는 축생이로다."
마침내 노인의 얼굴에 서슬 푸른 노기가 서리고 있었다.
"저게 보이는가."
노인이 천천히 지팡이를 쳐들어 보이고 있었다.
"자네 같은 축생의 눈에는 필시 저게 보이지 않겠지. 만약 자네가 영웅호걸이 될만한 재목이라면 저게 보이지 않을 턱이 없지. 대답해 보게. 자네 눈에는 저게 보이는가."
노인의 지팡이는 청년의 머리 위 어딘가를 가리켜 보이고 있었다. 군중들의 시선도 은밀하게 노인의 지팡이를 곁눈질로 따라가고 있었다.
"영웅호걸의 눈에는 저게 보이더라도 자네 같은 축생의 눈에는 저게 보이지 않을 게야."
노인의 목소리에는 청년에 대한 경멸과 조소가 내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청년은 노골적으로 자존심이 상한다는 표정을 드러내 보이면서 노인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도 영웅호걸의 반열에 끼일 수 있을지 모른다는 일말의 기대감이 청년의 의식을 순간적으로 사로잡았던 것은 아닐까. 그러나 노인의 지팡이가 가리키는 곳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단지 텅빈 하늘 뿐이었다.
"도대체 뭐가 보인다는 거야. 쓰..."
청년은 말끝마다 쓰벌이라는 단어를 종결부호로 사용하는 습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예외였다. 청년이 쓰벌이라는 종결부호를 꺼내는 순간 노인의 지팡이가 전광석화처럼 빠르게 허공을 가르고 있었다.
따악.
종결부호는 종결되지 않았다. 아무도 예기치 못했던 사태였다. 청년이 두 손으로 머리통을 감싸 쥐고 슬로우 비디오로 맥없이 무너지는 모습이 보였다. 따악 하는 소리 한번으로 모든 상황이 종결되고 있었다. 잠시 써늘한 정적이 주위를 얼어붙게 만들고 있었다. 군중들이 놀라움에 찬 눈길로 노인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늘 무서운 줄 모르는 놈 같으니."
노인은 혀를 끌끌 차면서 다시 의연한 걸음걸이로 지하도를 향해 사라져 가고 있었다. 그래도 군중들은 아직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 버리지 못한 표정들이었다. 그때였다.
"죽어라. 개새끼."
팔다리가 부러졌거나 숨이 넘어가버린 줄로 알았던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쓰러져 있는 청년의 대갈통을 축구공처럼 세차게 걷어차 주고는 군중들 사이를 비집고 잽싸게 도로 건너편으로 도망치고 있었다.
"저 녀석 멀쩡하군요."
"엄살이었나."
"그토록 직사하게 얻어 터지고도 끄떡이 없네요."
"폭력에는 이력이 났겠지요."
"아까는 저 녀석 정말 죽는 줄 알았는데."
"만약 노인네까지 봉변을 당했더라면 나도 가만 있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도대체 경찰들은 왜 이런 인간 쓰레기들을 그대로 방치해 두는지 모르겠어요."
"교통위반 단속 하느라고 바빠서 그럴 겁니다."
그제서야 군중들은 다소 불안감이 해소된 얼굴로 잡담들을 나누는 여유를 배당받게 되었다. 달짝지근한 해방감이 군중들의 얼굴에 설탕물처럼 발라져 있었다. 그러나 군중들의 얼굴에 설탕물처럼 발라져 있던 해방감은 별로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불과 십 여 분도 못 되어 군중들은 일제히 입을 다물어 버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쓰러져 있던 청년이 정신을 차리고 일어섰기 때문이었다.
군중들은 다시 처음과 같은 상태로 되돌아가 있었다. 자신들은 지금까지 오로지 택시를 기다리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었으며 곁에서일어난 사태에 대해서는 눈길조차 주어 본 적이 없다는 표정들이었다. 이제 얼굴에 발라져 있던 설탕물은 모골을 적시는 식은땀으로 변하고 있었다.
"이 씹새이야. 아까 그 노털 어디로 갔어. 바른 대로 불지 않으면 오늘 줄초상 나는 줄 알아. 쓰벌."
청년의 분노는 극에 달해 있었다. 군중들을 아무나 한 사람씩 선정해서 멱살을 틀어잡고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대라고 포악스러운 기세로 윽박지르고 있었다. 그런데 군중들 사이에 매우 놀라운 현상이 자연스럽게 표출되고 있었다. 멱살을 틀어 잡힌 사람들은 누구나 겁에 질린 표정을 감출 수가 없었지만 노인이 사라진 방향을 가리킬 때는 모두들 약속이나 한 듯이 손가락으로 정반대 방향을 가리키고 있었다. 노인이 떠나고 난 다음 군중들의 가슴밭에 양심이라는 이름의 새순 하나가 자기 손가락 만한 크기로 살며시 얼굴을 내밀고 있다는 증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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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소수의 문하생들이 있다
모두 문학에 인생을 걸고 도제식으로 공부하는 젊은이들이다
수제자는 서울의 모일간지 신춘문예를 통해 작가로 데뷰를 했고
내 문하에서 도제식 수업을 쌓은 지 십 년이 넘었다
나머지 문하생들도 소정의 연수과정을 이수하고
상주연수생으로 들어와 기초적인 공부를 철저하게 다진 다음
사회로 진출해서 나름대로의 습작과정을 거치고 있다
문학은 달콤한 막대사탕이 아니다
일단 상주연수생으로 영입되는 순간부터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특공대 과정을 방불케 하는 각양각색의 어려움을 겪어야 한다
도제식의 특성이다
나는 그들에게 끊임없이 자기소멸을 강요한다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자신을 철저하게 버리고
새로운 자신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강요하는 것이다
자신이 알고 있는 자신을 소멸시켜 본 적이 없는 자는
만물을 사랑할 바탕을 얻기 힘들고
만물을 사랑할 바탕을 얻기 힘들면
문인으로서의 자격도 함량미달일 수밖에 없다
우리 집을 한 번이라도 방문해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문하생들이 타인을 대하는 태도나 마음가짐은
기특함을 넘어서 거룩함까지 느끼게 만드는 수준에 달해 있다
마음이 착하다고 아무나 넘볼 수준도 아니고
재능이 있다고 아무나 넘볼 수준도 아니다
홈페이지 공지를 보고 몇 명의 상주연수생 지원자들이 신청서를 보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아직 상주연수생이 될만한 재목이 눈에 띄지 않는다
특히 대부분의 신청자들이 문학을 너무 만만하게 보고 있다는 인상을 풍긴다
문학을 무슨 도피의 수단이나 위안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신청자들도 적지 않았다
그들에게 말해 주고 싶다
문학을 그대 인생의 간이역으로 생각지 말고
문학을 그대 인생의 종착지로 생각하라
(문학은 달콤한 막대사탕이 아니다. -이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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解 憂 石
李 外 秀
녹전碌田 김평욱金平旭은 마흔 두 살에 결혼해서 슬하에 다섯 살 난 아들 하나를 두고 있었다. 그는 탐석광探石狂이었다. 명석을 찾아서 허구한 날을 땅바닥만 내려다 보며 전국을 누비다 보니 자연히 결혼이 늦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뒤늦게 결혼을 하고 나서도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을 가지고 가정을 돌보지는 않았다. 오로지 탐석에만 열중했다. 아이가 태어나서 다섯 살이 될 때까지 얼굴을 네 번밖에 대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아버지가 된 연후로 집에 들어 간 적이 일 년에 한 번 꼴도 못 되는 셈이었다. 누가 가정에 대해서 물으면 언제나 함구무언이었다. 마누라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고 아이의 나이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다행스럽게도 경제적으로는 그리 쪼들리는 편이 아니었다.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얼마간의 재산도 있는 데다 마누라가 직장생활을 해서 벌어 오는 돈도 있었다. 단지 무관심이 문제였다.
하지만 그가 주관하고 있는 탐석회의 회원들은 가족들조차 팽개치고 탐석에만 몰두하는 그의 열의를 귀감의 표본이나 되는 듯이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탐석을 통해서 도에 이르고자 하는 수도자의 한 사람이었다. 모두들 흉내를 내지 못해 조바심이 나 있을 정도였다. 마누라들이 그 사실을 알면 암살이라도 모의하지 않을까 자못 걱정이 앞설 지경이었다.
좋은 돌을 만나기란 좋은 마누라를 만나기보다 몇 배나 힘든 법이었다. 그런데도 그가 수집해 놓은 돌들은 모두가 수준급이었다. 백과사전이나 수석입문서에 명석의표본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들도 한 두 점이 아니었다. 뿐만 아니라 돌에 관한 전문지식도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몇 날 몇 밤이라도 지치지 않고 떠들어 댈 수가 있었다.
그러나 해우석解憂石에 관한 말만 나오면 그는 아무 대꾸도 하지 못했다. 대번에 기가 죽어 버린 표정으로 탄식 같은 한숨만 길게 내뱉을 뿐이었다. 그가 알고 있는 바에 의하면 절에서는 화장실을 해우당解憂堂이라고 지칭하는데 화장실이 일만근심을 덜어준다는 연유에서 붙여진 이름이었다. 그러니까 해우라는 단어는 해탈이라는 단어와 같은 의미였다. 따라서 해우석은 그대로 해탈석이나 다름이없었다. 보기만 하면 일만근심을 사라져 버리게 만드는 돌. 탐석을 생활의 전부로 알고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게 되는돌. 그는 이 세상에 반드시 그런 돌이 존재하리라고 믿고 있었다.
얼음이 얼고 있었다. 그는 도계에서 산수경석山水景石 한 점을 건진 것으로 만족하고 올해의 탐석을 모두 마무리 짓기로 마음먹었다. 오석이었다. 경도도 높고 빛깔도 짙었다. 적당히 균형 잡힌 두 개의 산봉우리 사이로 하얀 폭포가 수직으로 낙하하고 있었다. 제법 빠지지 않는 운치를 가지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니 생각대로 그의 마누라는 볼이 부어 있었다. 아이도 서먹서먹해 하는 표정이었다. 멀찍이서 그의 주변을 맴돌기만 했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을 손질하기 시작했다. 돌은 차츰 윤기를 드러내며 선명한 빛깔로 되살아나고 있었다. 몇 십분이 지나자 아이는 서먹서먹함이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곁에까지 바싹 접근해서 호기심이 서린 표정으로 그의 작업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빠. 그거 뭐예요."
한참만에 아이가 도계에서 탐석해 온 산수경석을 가리키며 그에게 물었다.
“돌이란다."
그는 아이가 자신이 탐석해 온 돌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 주었다는 사실에 적지 않은 반가움을 느끼며 호기있는 목소리로 대답해 주었다.
“그거 돌 아니에요."
그러나 아이는 완강하게 도리질을 해 보였다.
“그럼 이게 뭐지."
“몰라요."
“이게 진짜 돌이야."
“아니에요."
아이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슬그머니 밖으로 나가 버렸는데 그는 줄곧 왜 아이가 자신이 탐석해 온 산수경석을 돌이 아니라고 우겼는지 의아해 하고 있었다. 그러나 미처 십여 분도 지나지 않아서 아이가 방 안으로 다시 들어왔다. 그리고 그 의아함은 순식간에 충격으로 뒤바뀌면서 지금까지 그가 오래도록 간직하고 있던 관념의 벽을 한꺼번에 허물어 버리는 사태를 유발시켰다.
“이게 돌이예요."
아이의 손에는 길바닥에 굴러 다니는 작은 돌멩이들 몇 개가 쥐어져 있었다. 충격적이었다. 갑자기 그는 지금까지 자신이 너무 돌에 대해서 주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시야가 확 트여 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는 아이의 앙증맞은 손아귀를 주시하면서 자신이 너무 오랜 세월에 걸쳐서 돌을 편애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가 전국을 헤매면서 찾아다닌 돌들은 아이의 말대로 진정한 돌이 아닐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아이의 손에 쥐어져 있는 저 평범한 잡석이야말로 진정한 돌일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비로소 이 세상 모든 돌들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참동안 아이의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 보면서 그는 마침내 자신의 해우석을 찾아내었음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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